제1장: 엘리트의 딜레마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미술사 석사 학위를 한 손에, 산더미 같은 학자금 대출을 다른 한 손에 쥐고 인천공항을 빠져나온 서연우(Seo Yeon-woo)는 익숙한 한국의 공기가 자신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뉴욕은 지적 열정과 예술적 자유의 꿈이었지만, 서울은 집이자, 효율성으로 빛나지만 꿈, 특히 미술사 같은 꿈에는 좀처럼 인내심을 보여주지 않는 도시였다.
부모님은 잠실의 아파트에 그녀의 졸업 사진을 자랑스럽게 걸어두셨지만, 이내 질문이 따라왔다. “그렇게 똑똑하게, 멀리까지 가서 공부해놓고… 그 학위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니?”, “네 사촌은 서울대 나와서 지금 대기업에서 얼마나 잘나가는지 알지?”
압박감은 엄청났다. 연우는 월급 300만 원짜리 갤러리 어시스턴트 자리에는 과분했고, 테헤란로의 대기업들이 내건 초봉 6,000만 원짜리 신입 프로그램에는 완전히 자격 미달이었다. 그녀는 지극히 한국적인 역설에 갇혀 있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지만, 이 실용적인 생태계에서는 그것이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 밤, 지독한 현타를 느끼며 핸드폰을 스크롤하던 그녀는 현대 관계에 대한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기사의 링크는 세련되고 미니멀한 인터페이스의 한 사이트로 그녀를 이끌었다: Btcsugardating.com.
자신의 지적 이상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졌지만, 동시에 기묘하고 반항적인 인류학적 실험 같기도 했다. 그녀는 프로필을 만들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아트리움을 통해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찍은 사진을 올렸다. 자기소개란에는 단 한 줄의, 도전적인 문장을 남겼다.
“현대적 공명을 찾는 오래된 영혼.” (An old soul seeking contemporary resonance.)
며칠 후,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유저 아이디는 단지 ‘Z’. 그의 프로필에는 슬래시로 구분된 세 도시가 적혀 있었다: 서울 / 뉴욕 / 실리콘밸리.
그의 첫 메시지는 시시한 작업 멘트가 아닌, 도전 과제였다. “어떤 종류의 공명이죠? 지적인 것, 아니면… 좀 더 실체적인 것?” (What kind of resonance? Intellectual, or something more… tangible?)
연우는 상투적인 잡음을 꿰뚫는 그의 직설적인 접근에 흥미를 느끼며 답장했다. “둘 다일 수는 없나요?” (Why not both?)
잠시 후, 답장이 왔다. “포시즌스 호텔, 찰스 H. 바. 내일 저녁 8시. 제가 빈티지 네그로니를 마시고 있는 사람일 겁니다.”
제2장: 우디 앨런 같은 밤
광화문에 위치한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찰스 H.(Charles H.) 바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 같았다. 화려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는 서울보다는 차라리 영화 속의 한 장면, 혹은 그들이 공유하는 영화적 세계관에 더 가까웠다.
연우는 그를 즉시 알아보았다. 바에 앉아 있는 그는 조용한 권위를 뿜어내며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맞춤 셔츠에 노타이 차림, 손목에는 파텍 필립 칼라트라바가 채워져 있었다. 그는 절제된 힘의 전형이었다. 그는 빠르게 성장하는 AI 유니콘 기업의 천재 CEO, 강태준(Kang Tae-joon)이었다.
“연우 씨?” 그의 목소리는 차분한 바리톤으로, 바의 활기찬 분위기와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Z 씨?” 그녀는 그가 가리키는 자리에 앉았다.
그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이곳… 꼭 우디 앨런 영화 같지 않나요?”
연우의 심장이 멎을 뻔했다. 암호였다. “정말 그렇네요,” 그녀의 자신감이 솟아났다. “지적이면서도 구제 불능의 로맨티시즘이랄까요. 금방이라도 티모시 샬라메가 들어와서 날씨와 자신의 매력적인 무능함에 대해 불평할 것 같아요.”
진심에서 우러나온 따뜻한 웃음이 그에게서 터져 나왔다. “《어 레이니 데이 인 뉴욕》 말이군요.”
“그 영화는 아름다운 멜랑콜리에 바치는 러브레터 같죠,” 연우는 자신의 칵테일을 저으며 생각에 잠겼다. “전 항상 엘르 패닝이 연기한 ‘챈’이라는 캐릭터가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 같다고 느꼈어요. 똑똑하고, 야심만만하고,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지만, 순수하고 계획에 없던 감정의 순간에 휩쓸려 버리죠.”
“그리고 샬라메가 연기한 ‘개츠비’는,” 태준이 그녀의 눈을 응시하며 말을 받았다. “가짜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진정성을 찾아 헤매며 낭만적 이상 속에서 길을 잃죠. 그가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는 건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진짜 연결을 찾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 순간, CEO, 졸업생, ‘슈가 베이비’, ‘스폰서’ 같은 모든 꼬리표가 사라졌다. 그들은 단지 서울의 밤하늘 아래에서, 함께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통해 서로의 희귀한 정신적 좌표를 찾아낸 두 사람이었다.
“그럼 우리야말로 현실판 개츠비와 챈이네요,” 연우가 대담한 자의식을 담아 말했다. “잘 짜인 게임 속에서 낭만적이고 대본 없는 우연을 바라는.”
태준이 살짝 몸을 기울였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친밀한 음색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서연우 씨… 우리만의 마법을 만들어 볼까요?”
제3장: 서울의 상공에서 무너지다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시그니엘 서울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은 긴장된 침묵이 흘렀다. 연우는 옆에 선 그의 존재를 예민하게 의식했다. 그의 톰 포드 향수와 호텔의 달콤한 향이 뒤섞여 그녀의 심장을 뛰게 했다.
그가 프리미어 스위트룸의 문을 열자,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눈앞에서 폭발하듯 펼쳐졌다. 한강과 도시의 불빛이 발아래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 풍경은 단순한 전망이 아니라 권력, 야망,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선언이었다.
태준은 메인 조명을 켜지 않았다. 그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통유리창으로 다가갔고, 도시의 불빛이 그의 실루엣을 비췄다. “일 년의 대부분을 이런 방에서 깨어납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녀가 이제 이해할 수 있는 피로감이 섞여 있었다. “뉴욕, 런던, 실리콘밸리… 풍경은 바뀌지만, 외로움은 그대로죠.”
“정착할 곳을 찾는 글로벌 노마드군요.” 연우가 속삭였다.
그 간단하고도 정확한 한마디에 그가 돌아섰다. 그는 방을 가로질러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의 그림자가 그녀를 집어삼킬 듯 다가왔다. 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부드럽게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오늘 밤,” 그가 속삭였다. 그의 시선은 강렬했다. “저는 그곳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의 키스는 계시와도 같았다. 애정을 사는 남자의 키스가 아니었다. 사막을 건넌 끝에 마침내 물을 찾은 남자의 키스였다. 느리고, 신중하며, 깊은 감사가 담겨 있었다.
그는 그녀를 가뿐하게 안아 올려 호화로운 킹사이즈 침대로 향했다. 그녀의 등이 비단처럼 부드러운 시트에 닿았을 때,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몸을 처음 발견한 걸작처럼 다루었고, 그의 손과 입술은 경외심을 담아 그녀의 곡선을 탐험했다. 방 안의 시원한 공기는 그가 그녀의 피부 위에서 지피는 불길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는 그녀의 귀에 대고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두려워 말아요… 단지… 당신의 영혼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을 뿐이니까.”
연우는 자신의 지성이 쌓아 올린 견고한 벽이 먼지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거래가 아니었다. 완전한 귀의였다. 그녀는 등을 아치형으로 휘며 그의 단단한 어깨 근육에 손톱을 파고들었고, 그에게, 그 감각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겼다.
태준에게 이것은 육체적 해소 이상이었다. 그것은 심오한 안식의 행위였다. 주가와 알고리즘의 효율성으로 측정되는 삶 속에서, 연우의 꾸밈없고 진실된 반응은 그가 몇 년 만에 마주한 가장 현실적인 데이터였다. 그는 정복하는 것이 아니었다. 연결되고 있었다. 순수한 본능이 이끄는 리듬에 맞춰 그들의 몸이 움직일 때, 그는 자신의 거대한 제국의 무게가 사라지고 오직 품에 안은 여인의 완벽한 현실만이 남는 것을 느꼈다.
에필로그: 다음 목적지
연우는 동틀 녘의 부드러운 빛에 잠이 깼다. 도시는 고요했다. 그녀는 태준의 팔에 안겨 있었고, 그의 규칙적인 숨소리는 그녀 등 뒤에서 가장 편안한 리듬이 되어 주었다.
“사라졌을 줄 알았어요.” 그녀는 그가 여전히 곁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속삭였다.
그는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연우 씨,”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잠에 잠겨 있었다. “그 사이트에서 우리의 관계는 ‘상호 이익’으로 정의되어 있죠.”
그녀의 심장이 순간 내려앉았다.
“어젯밤, 당신은 내게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평온함을 주었어요,” 그는 지극히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이익에 대해, 하룻밤은 공정한 교환이 아닙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 말의 무게가 내려앉기를 기다렸다.
“다음 주에 이사회 때문에 뉴욕으로 갑니다. 만약 당신의 그 ‘쓸모없는’ 학위를 어떻게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면,” 그는 부드러운 농담조로 말했다. “나와 함께 가요. 뉴욕에는 컬럼비아 출신의 학자를 알아볼 갤러리들이 꽤 있을 테니까.”
그것은 영원에 대한 약속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종류의 삶으로의 초대였고, 서울의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그의 스릴 넘치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초대였다.
연우는 그의 품에서 몸을 돌려 그를 마주 보았다. 그의 맑고 진지한 눈을 들여다보며, 그녀는 자신이 그 웹사이트를 찾았던 이유가 자신의 막막한 인생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함이었음을 알았다.
그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자신이 찾은 것이 완전히 새롭고 가슴 뛰는 방정식일 줄은.